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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31일 JCS 서울 : 고백
2015-05-13 , Wednesday

[작성일: 2013.6.3]

*'간증' 아니다. 고백이다.

*그런데 어쩐지, 쓰는 나마저도 - 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 - 마치 간증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까닭은 왠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건 어떤 식으로든 종교적 믿음과는 관계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극의 감동은, 종교적인 것들과 아주 많은 요소를 공유한다. 믿음이라든가, 사랑이라든가, 희생이라든가, 말씀이라든가, 복음이라든가, 또 용서와 부활, 신과 인간, 운명과 인간의 역사에 대한 -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극을 보는 동안, 머릿속을 명멸해간다. 문제는, 이게 피상적이거나 논리적인 형태가 아니라는 거다. 마치 2천년전, 인류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새로운 길로 이끌었던 놀라운 사변'이 그랬었으리라 생각되는 것처럼 - 살아서 - 무대에서 객석 이쪽으로 날아온다. 그것은 마치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둔기의 타격처럼 퍽 하고 심장을 강타한다. 2013년 서울에서 공연된 지저스 크라이스 슈퍼스타의 2막을 보는 순간만큼 - '인간 영혼의 질감'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 있었나 싶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2막 내내 울 수가 있었겠나 싶다.
그 울음은 공연이 끝나고 얼마 지나서 멈췄지만,
마음 속에서는 계속 흘러, 그 다음날도
그 다음다음날도 계속 흐르고 있었다.

*공연 시작 즈음만 해도, 난 - 유다에 육박할 만큼은 안되겠지만, 나름껏 부정과 배신의 준비를 하고 있는 관객이었다. 이걸 정확히 뭐라고 분류하기는 어렵지만 - 닌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어줍잖게 건드리는 것을 엄청나게 싫어한다. 누구든 안 그럴까만 어쨌든 그랬다. 심지어 나 자신이 그러는 것도 싫어한다. 그러니까 어떤 한 작품의 완성본이 나왔고, 내가 그것을 받아들였다면, 가급적, 혹은 절대로 다른 버전을 찾거나 보려들질 않는다. 앞선 글에서 슬쩍 한 얘기다.

그러니까, 난 마음의 설레임 하나 없이 객석에 앉아있었다. 그 순간엔, 사람들의 평은 나한테 하나도 상관없었고, 마이클 리에 대한 숱한 이야기도 - 본질적으로는 나에겐 전혀 상관없었다.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그랬다. 그런데 어느 쪽인가 하면, 난 역시 비관적이었던 거다. 왜냐하면 '확률' 때문이었다. 1970년에 발표된 한 작품이 있다. 그 작품은 이후 전 세계의 수많은 뮤지컬 극단에서 40년동안 공연되었다. 내가 그걸 다 본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명연이라고 일컬은 그 어떤 무대도, 나한테 결정적인 느낌을 주지 않았다. 마치 원전(原典)-그것도 컨셉 음반 버전을 빼고는, 불감증에라도 걸린 양, 멀거니 구경했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음악 작품 중 하나였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그 예외적 버전'을 - 2013년, 한국 서울에서 '지금' 만나게 된다고? 난 그걸 믿지 않았다. 잘은 몰랐는데, 그렇다는 것을 객석에 앉아서 깨달았다.

*그런데 오버츄어가 시작되고, 연주가 진행되자마자 - 첫번째 '헉!'이 바로 나를 때렸다. 바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땐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거였던 것 같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연상케 하는 JCS 오버츄어는, 그 어느 버전보다 예각적이었고, 희생자를 부르는 로마 병사들의 검이 번쩍거리는 것처럼 날카로운 칼날을 음악 속에 드리우고 있었다. 피의 냄새가 이미 서곡 속에서 풍겨나오고 있었다. 연주 속에는 마치 속삭이는 것처럼, 명확한 메시지가 있었다. '우리는 진지하다'였다.

우리는 여기서, 단 하나의 농담도, 단 하나의 후퇴도, 단 하나의 연극적 잔재주도 없는, 진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해낼 것이라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 때문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아, 이 무대 버전을 만든 누군가는 - 그것이 연출자 이지나이든, 음악감독 정재일이든 - 혹은 당연히 그렇겠지만 두 사람 다이든 - 이곳의 창작자들이, 이 작품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내가 느낀 그 감동을 이 사람들도 아주 많이 느껴왔고, 그걸 아주 많이 고민했고,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전력을 다해서, 그걸 새롭게 이곳에서 표현하기로 마음먹었구나... 라고 말이다. 사람과 사람이 느끼는 감동이란, 비슷한 듯 하면서도 얼마나 다른가. 만나기 쉬운 듯 하면서도 얼마나 만나기 어려운 일인가. 그런데 같은 결의 '애정'이 그곳에 살아숨쉬고 있었다.

*유다 한지상. 두번째로 '오~!'라는 탄성을 내지르게 만든 건, 유다 한지상이었다. JCS는, 어쩌면 '겟세마네'만 살아있으면, 거의 다 되는 거나 마찬가지인 극인지도 모른다. 위에서 얘기한 서주의 멋진 편곡 없이도, 또 앞으로 얘기할 극적 연출 없이도, 아무 것 없이도, 그저 - 역사적이고 놀라운 겟세마네만으로도, 극의 힘이 사막 위에 기둥을 박고 건물을 세울 수 있는 극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 역시 누구보다 극렬한 '겟세마네 중심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중요했다. 여기서 얘기하는 것은, 캐릭터나 해석이 아니라 보컬이다. 일단 첫 관람 객석에 앉아있던 내겐 그랬다. 다른 모든 걸 차치하고, '허술한 유다'가 있게 되면, Heaven On Their minds 등이 성립하질 못할 것이었고, 그 노래들이 활 시위를 팽팽이 당겨주질 않는 구조 속에서의 겟세마네란, 당겨주는 줄이 허술한 텐트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The Last Supper에서 웃다가, 겟세마네에서 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지상이 아주 좋은 배우라고 얘길 들었고, 또 엄청나게 잘 하고 있다는 칭찬도 들었지만 - 난 그가 가진 음역이 하이톤이라, '나하고는 크게 결속이 안되는 형태'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한마디로, 이것저것 잴 것은 다 재고 따질 것은 다 따지며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무대에 선 그는 유다였다. 하이톤이니 로톤이니 하는 수준의 문제를 넘어서 있었다. 그는 배역 속으로 들어가 있었고, 노래는 단단하게 제 몫을 하고 있었고, 취향 따위는 간단히 넘어서는 훌륭한 가창을 해내고 있었다.

*그런데 엉뚱한 일이 발생한다. 바로 마이클 리였다. 1막의 전반부에서, 다른 모든 요소들이 흔쾌히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데 - 정작 주인공인 마이클 리의 보컬을 난 무덤덤히 듣고 있었다. 이유? 그의 발음 때문이었을까. 예전에 미스사이공을 보면서는, 사람들이 그의 불완전한 한국어 발음을 뭐라 하건, 난 그다지 개의치않았다. 그런데 그건 내가 작품 자체에 무심했었기 때문이었나보다. 자음 사이 사이에 h발음이 슬쩍 슬쩍 삽입되는 미국식 한국어 발음의 자국을 들으며 - 그 생각을 물끄러미 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그야말로 '내 식대로의 생각'이다. 내 방식의 트집이고 까탈스러움이다. 뭐 어쩌겠는가. 감상자란 그런 거다. 좋아하는 작품일수록 더욱 그런 것이다. 그리고 '내 방식'대로 그 거리는 깨진다. 바로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의 타락상에 분노하는 샤우팅에서 말이다. 쨍그랑 하면서 유리가 깨지듯, 그 순간에 그는 예수가 된다. 뭐, 이건 전형적인 '내 방식의, 철저한 보컬 중심주의 감상자의 방식'에 의한 전환이다. 다른 사람들, 연출이나 연기나 곡이나 기타 등등 다른 것에 더 천착하는 감상자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거리를 느끼거나 감동을 느끼거나 하면서, 1막을 보냈을 것이다.

*자 이제 간증, 아 아니 고백타임. 그런데 위에서 얘기한 모든 것들이 - 다 부질없이 헛되어지는 순간이 온다. 그건 물론, 당연히 - 도대체 다른 무엇이겠는가 - 겟세마네다.

*용광로의 온도는 1000도. 다 녹는다. 철이든 나무든 이성이든, 감성이든, 오만함이든, 냉소이든, 고집이든, 원리주의든, 상대주의든 - 다 녹아버린다. 연출이 대단히 훌륭해서, 1막을 지내고 2막으로 접어들면, 절로 숙연해지지만 그것은 어쨌든 준비과정일 뿐, 모든 것은 그 이글거리는 불길 속에서 다 액화하고 기화하고 폭발한다. 이건 단언컨대, '보컬적 승리'와는 또 다른 차원의 것이어서, 난 도대체 어떻게 이런 현상이 가능한지를 모르겠다.

*그리하여, 곡이 끝나고 나면 - 객석에 앉아있는 내가 액체인지, 기체인지, 잿더미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숱한 청중들이 다리가 풀리고, 눈물이 샘솟고, 극이 끝나고 난 뒤로도 열병과 울렁거림을 겪곤 한다는 - 다시 말하지만 '간증'은 아닙니다만 - 지독하디 지독한 일이 일어난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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