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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성균관 스캔들 제 5 화 - 조선의 근대여, 꽃피지 못한 젊은 선조들이여
2010-09-14 , Tues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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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월화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은 정확히 두가지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첫째, 인기 로맨스 소설인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드라마화한다는 사실이었고, 둘째는 동방신기의 멤버 믹키유천의 드라마 데뷔작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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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방신기의 음악을 상당히 좋아하는 사람이고, 또 믹키유천이 동방신기 멤버들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에 호조건을 갖춘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얼핏 한 적은 있지만, 그렇다고 이 극에 큰 흥미를 갖지는 않았습니다. 드라마화된 로맨스 소설이나 만화들이 대부분 제 취향이 아니어서였을까요. 그보단 제가 요즘 TV를 좀처럼 보지 않은 탓이 더 클겁니다.

그래도 첫회를 챙겨본건, 어쨌든 '믹키유천을 구경'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리곤 그와 다른 연기자들을 '구경'했네요. 믹키유천은 꽤 호평을 받았지요. 극 자체도 평균 이상은 되는 준비와 구조를 갖춘 듯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두어회를 보고선, 슬슬 그만 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딱히 극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위에서 말한대로, '로맨스물의 극화' 정도가 아닐까 싶은 생각에서였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세대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연기자들이 '예뻐보여야하는 당위'속에서 움직이는 극은, 저처럼 중년의 시청자에겐 결국은 작위적으로 보이기 마련입니다. 극에 나름의 에너지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젊은 연기자들은 '멋져보여야 한다'는 흥행코드를 분명 의식한 듯 보였고, 또 제작진도 그런 이미지 안배를 꽤 염두에 두는 듯 보였습니다. 그건 틀리거나 나쁜 게 아닙니다. 원작도 로맨스소설이었고, 주 시청자들도 바로 '그걸' 바라고 있었고, , 그래서 1+1=2의 공식처럼 분명하게 프레임이 짜여진 듯 보였습니다. 잘생긴 연기자들이, 가슴설레면서 짜릿한 로맨스를 만들어내면 백점을 맞는 프레임 말입니다. 요즘 인터넷 유행어식으로 말하자면 '남주'와 '여주'의 '케미'가 '돋게' 그리면 끝인 드라마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5화에서 한대 맞아버렸네요.


3

제 머리를 가장 세게 때린 것은 - 이 드라마의 작가인지, 연출진인지 누군지가 말입니다. 이 드라마를 십대, 혹은 이십대 초반 시청자 전용의 청춘 로맨스물로 생각하질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 예쁘장한 남녀 청춘스타들이 주인공이 아니었던 겁니다. 동방신기 믹키유천쯤 되는 인물을 섭외하면, 사실 작가나 연출진이나 제작자들은 엄청나게 게을러지곤 합니다. 드라마가 종료되기 전에, 해외 판권 다 팔리고, 팬들이 뜨거운 서포트를 해주면, 저도 모르게 무게 중심을 점점 해당 스타 쪽으로 기울여 나중에는 그 스타에게 엄청나게 의존을 합니다. 드라마 제작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비지니스가 되기 마련이니까, 제작진 또한 일정한 성과를 거둬야하는 생업인들이니까, 결국엔 스타 파워에 집중하고, 작품을 통해서 추구해나가야할 독한 심지 같은 건 소실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믹키유천이나 송중기나 유아인과 같은, 대세를 탄 청춘들을 대거 기용했으면서도, 거기에 하나도 의존을 안하는 겁니다.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말이에요. 정조이고, 정약용이었습니다. 진짜 조역들은 이선준과 문재신의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슬픕니다. 그들 모두는 기세등등해 보이지만, '수백년 왕조가 만들어놓은 거대 체제 속에서 체념과 권태와 허무에 빠진 기득권자'들입니다. 정조와 정약용조차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득권 최상층부에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선한 의도를 가지고 무언가를 해내려 노력해왔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끊임없는 갈등과 대립 속에서 숱한 비극이 일어나고, 발전은 더디기만 합니다. 전 그들이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이 '조선의 근대'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근대'까지는 아니라해도, 근대를 낳을 수 있었던 무언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조선의 근대를 모릅니다. 그것은 꽃피워지지 않았으니까요. 신분제가 폐지되고 왕정의 국가가 스스로의 역학에 의해 공화정으로 변하는 역사를 갖지 못했습니다. 세계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역사를 박탈당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근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평등과 자유라는 - 혹은 그 비슷한. 새롭고 실용적이고 인본주의적인 가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은 그 시대를 열지 못합니다. 그들은 늙었습니다. 빈틈없이 얽힌 모든 전통과 관념과 권력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들은 더 이상은 나아가지 못합니다. 이미 그들 스스로가 권력이고, 전통이고, 관념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들은 구체제의 아집에 그 정신이 완전히 먹히지는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새로운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았습니다. 언젠가는 다른 세상이 올 것이고, 그 주인공들이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언젠가는 자신들을 포함한 낡은 세상을 거역할 정신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예감합니다. 분명하게든, 희미하게든 말입니다.

그런 그들의 눈에 보이는 젊은이들 - 그것이 바로 이 드라마 속에 서 있는 젊은이들입니다. 젊기 때문에 아직 마음에 상처를 입을 줄 알고, 젊기 때문에 서로에게 손을 내밀게 되고, 좋은 것, 선한 것, 아름다운 것을 보면 무턱대고 설레이고, 새로운 것, 올바른 것, 정의로운 것을 꿈꾸며 현실을 거역할 수 있는 젊은이들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근대 - 바로 우리들의 근대를 낳을 수도 있었던 그 정신들을 말입니다. 세상에나, 이 드라마는 그런 이야기들도 함께 하려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전회에 그러한 이야기의 단초들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장식삼아 하는 이야기려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5화에서는 분명하게 극의 주제에 집중을 해버립니다. 젊은 극중 인물들은 진실하고 철학적인 고민을 합니다. 그리곤 그들이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모두들 부딪혀 심하게 상처입습니다. 그런데도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것도 정공법으로요. 그렇죠. 근대의 인본주의는 '세상의 진리를 추구하던 젊은이들의 정공법에 의해서 만들어진 세상'이었죠.

기껏 자유로와진 현대의 대학에서 현대의 젊은이들이 배우는 것은 사실 '돈 많이 벌기'입니다. 그리고 '놀기'와 '술먹기'죠. '연애질'도 포함되겠네요. 나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거야 어느 시대인들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근대의 대학도 그랬을 것이고, 동서양의 대학 모두가 그랬을 것이고, 이 드라마에서도 등장하듯이 성균관에서도 그랬겠네요. 그렇지만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젊은이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는 곳에서는 '무엇이 인간다운 것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를 부르짖는 목소리는 언제나, 어떤 역사 속에서나 존재했습니다. 그들 중의 몇몇은 끝까지 그 가치를 위해 살았고, 싸웠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진보를 그런 젊은이들이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정공법은 아무도 취하지 않습니다. 그랬다간. '오글거린다'란 소리를 듣기 십상이지요. 정의도 쿨하게 외쳐야합니다. 진리도 큐트하게 추구해야 합니다. 권력을 쥐고 부를 틀어쥔 자들은, 총을 들이대는 것보다 경품을 들이대면 세상을 훨씬 더 움직이기 쉽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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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정공법'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걸까요. 우린 그럭저럭 살만한 걸까요. 그런지도 모르지요. 세상에는 분명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있지만, 범죄와 부정과 사고가 쉴새없이 우리 곁에서 일어나긴 하지만, 그냥 평균적이고 일상적인 삶의 기준으로 볼 때, 아파트 방 한칸 마련하고 나면, 우리들 모두는 그럭저럭 그냥저냥 살만한 건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이 드라마의 제5화를 보면서는, 왜 그렇게 계속 눈시울이 뜨거워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정공법을 택하려는 젊은이들의 형형한 눈빛을 보노라니(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이 극의 젊은 연기자들은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상실해가는, 그러나 절대로 상실해서는 안되는 무언가를 만화경을 통해서 바라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린 지금, 괜찮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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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를 가장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시청자층은, 오히려 믹키유천과 송중기와 유아인과 원작을 - 그리고 인터넷의 연예게시판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말하자면 40대 시청자들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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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ea님의 댓글  2010.09.21    
아.. 페퍼님. 제가 성균관스캔들을 보면서 왜 그렇게 가슴이 쿵쾅거리고, 벅차오르고, 먹먹했는지 알것 같습니다. 그리고 왜 그렇게 조바심을 느꼈는지도.. 정말 요즘에 정말 무서운 것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기득권자들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과, 귀찮아서, 지금이 편하니까 등의 이유로 아무도 제대로 된 현실을 보려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저는 원작을 보고 이 드라마가 '귀여운' 청춘 드라마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믹키유천의 '이미지'에 잘 맞을 거라고 예상했더랍니다. 그런데 페퍼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 드라마는 그런 드라마가 아니었어요. 동방신기 팬인 제가 보기에 이 드라마는, 이선준은 믹키유천의 '귀엽고 감미로운 이미지'가 아닌, 믹키유천 그 자신을 보여주네요. 그가 연기하면서 가끔 깜짝 놀랄 때가 있는데, 그 이유는 이선준이 하는 대사가 정말 믹키유천 그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고, 조선의 새 세살을 열 주역인 젊은이들의 말이기도 하고, 또한 현대의 우리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차르트를 보면서 시아준수를 보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 시아준수에게서 모차르트가 보인 것처럼, 분명 드라마 속에서 '믹키유천'은 없었지만 저는 그렇게 와닿았습니다. 더불어 제가 조바심을 느낀 이유는 제가 '젊은이'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기득권으로 포화 상태가 된 현실은, 그리고 거대한 권력은 '젊은이'들을 숨막히게 하고 끊임없이 부딪히고 날아오르게 합니다. 이선준은 우리에게 이런 것을 바란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선준이면서 믹키유천이고, 믹키유천이면서 이선준인 그의 '선택'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요. 참 많은 생각과, 다짐을 하게 하고 벅찬 떨림과 감동을 주는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p.s 아~~ 대사성♡ 그분 나올 때마다 팡팡 터져요ㅎㅎ 조연 분들이 정말 꽉 차게 재밌어요!! 책방 주인도~ 저는 개인적으로 구용하 캐릭터도 참 좋더라구요(아무도 모르는 사실 혼자 알고 있는 인물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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