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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일 뮤지컬 '톡식히어로' - 이렇게 웃어본 것이 언제였더라
2011-09-11 , Sunday


1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하고 있는 뮤지컬 '톡식히어로'를 보고 왔습니다. 9월 10일 토요일 7시 공연이었습니다.

*일단 웃고 시작하겠습니다. 푸하하하하하! 이 뮤지컬 정말 웃깁니다. 공연 내내 배를 잡고 웃으면서, '도대체 이렇게 웃어본 게 얼마만이던가'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웃음이 값진 이유는, 그리고 가능했던 이유는, 공연 자체가 정말 알차고 재미나기 때문입니다.

*톡식히어로는 본 조비의 밴드 키보디스트인 데이비드 브라이언이 작곡을 한 뮤지컬입니다. 데이비드 브라이언은 토니상 수상작품인 뮤지컬 '멤피스'의 작곡자이기도 합니다. '멤피스'는 1950년대의 멤피스를 배경으로 흑백 갈등과 당시 '음악'을 테마로 다룬 작품이죠. 제가 음악적으로 큰 관심을 가진 시대라, 이 작품에 관해 따로 찾아본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후에 쓴 작품이 바로 이 '톡식히어로(원제는 The Toxic Avenger이고 동명 영화가 있죠)'라는군요.

*작품에서 나오는 음악들은, '본조비'라는 이름에서 연상되듯, 전형적인 백인적 냄새 물씬 풍기는 락 넘버들입니다. 제가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름의 힘은 분명 있는 장르음악이죠. 그런데 전 이걸 한국 배우나 가수들이 부르면 훨씬 더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미국의 백인적 냄새'라는 것은, 뿌리를 파고들면 '컨츄리풍의 냄새'죠. 미국식 로컬 음악인 겁니다. 그런데 이걸 우리나라 보컬리스트들이 부르면, 그 냄새가 희석되고, 오히려 본연의 락적인 힘만 더 살아날 수 있으니까요. 트로트를 외국 사람이 부르면, '덜 트로트'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 뮤지컬을 보러간 건, 그 음악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배우 정영주 때문이죠. 그녀는 지난 뮤지컬 모차르트의 성남 공연에서 '베버부인'역을 맡았고, 그전엔 빌리엘리어트의 선생님 역을 맡아 2011년 뮤지컬어워드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죠. 전 뮤지컬 모차르트에서 그녀를 첫 대면했는데 - 그녀의 소리를 듣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그녀의 목소리에서 '블루스' 냄새가 풍겨나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아준수가 같은 계열의 특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얼마나 저희가 기뻐했는지 아시는 독자분이라면, 이 또한 얼마나 놀라고 반가워했을지 짐작하실 겁니다.

*단, 뮤지컬 모차르트에서 그녀의 솔로곡은 없습니다. 그러나 노래는 물론이고, 대사에서까지도 풍겨나오는 그 '리듬의 육중함과 탄력성'때문에, 저 배우의 다른 작품도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작품 '톡식히어로'에서, 그녀는 - 과장 좀 보태서 - 자신이 '한국 뮤지컬계의 빅마마손튼'임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빅마마손튼은 전설적인 여성 블루스 보컬리스트입니다). 블루스 장르에서, 여성 보컬리스트들이 차지하는 역할은 지대합니다. 때로는 남성을 압도하는 플로우와 힘을 과시하며 굳건한 음악사의 한축을 이뤄냈지요. 아, 또 '주절주절'이 나오려고 하는군요. 이 놈의 장르팬 근성. 하여튼 각설하고 다시 뮤지컬 얘기로.

(이후로, 이 뮤지컬의 내용이나 장면 이야기 나옵니다)
(그런데 알고봐도 별 상관없습니다. ^ ^)

*간단히 줄거리를 말하자면 - 과학자 지망생인 '왕따' 청년 멜빈은, 도시에서 풍겨나는 악취의 근원이, 불법폐기된 유독물질임을 발견하고 이를 막으려 합니다. 그러다 이 문제의 주범인 여시장의 사주를 받은 악당들에 의해 유독물질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그리곤 녹색괴물 '톡시'로 재탄생하죠. 그런 이야기입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전혀 심각하지 않은 B급 플롯의 슈퍼히어로 액션 코미디물입니다.

*제가 본 회차의 캐스트는:
멜빈+톡시 역을 맡은 이기찬(네, 가수 이기찬요), 앞을 못 보는 장님 도서관 사서 새라 최우리(지난 헤드윅에서 이츠학 역을 맡기도 했던 여배우입니다), 여시장 역과 멜빈의 어머니 역을 1인2역으로 해치우는 정영주, 그리고 20벌의 의상을 갈아입어가며 나머지 모든 역을 다 맡아하는 멀티맨1 고명환(네, 개그맨 고명환입니다)과 멀티맨2 김형근입니다.

*공연 초반부, 수트를 차려입은 정영주 여시장이 나와, 소울펑키 넘버를 멋지게 불러주는데 - 이건 뭐 입이 쩍 벌어집니다. 자신의 소리에 걸맞는 장르 음악을 해내는 이 여성의 그루브와 힘은, 그야말로 명투수가 공을 던졌을 때에 글러브에 공을 딱 받아내는 '밀착감'을 느끼게 해주더군요.  

특히나 정영주는, 보컬 뿐 아니라, 대사, 몸 동작, 상대역 배우와 주고받는 기의 흐름에서까지도 그야말로 동물적인 스프링감(?)을 뿜어줍니다. 이건 지난 뮤지컬 모차르트의 '똥묻는 돼지꼬리'씬에서도 느꼈던 것이죠. 짧은 장면이지만 시아준수와 주고받는 대사의 탄력감도 범상치 않아서, 그 장면이 아주 쫄깃쫄깃해졌었죠. '같은 계열의 힘이 만났군'이라고 생각하면서 즐겁게 봤습니다. 두 사람이 짧게라도 함께 호흡을 맞추는 노래가 있었다면 정말 재미있었을 텐데요.


2

*다른 배우들 이야기도 해야죠. 이기찬은 말이에요. 아니, 이 사람은 무대 연기를 왜 이렇게 잘 하나요? 가수가 뮤지컬 무대에 서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상황조건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쏟아야하는 '에너지'와 '반대급부'가 - 뮤지컬 무대에서는 다릅니다. '에너지'는 가수일 때보다 훨씬 더 필요한 반면에, '반대급부'는 훨씬 더 줄어들죠.

그래서 많은 가수들이 제대로 못해냅니다. 뮤지컬 무대에 서기 위해 필요한 연습량마저도 채워내지 못해 허덕이기도 하고, 캐릭터를 입는다는 아주 기본적인 조건 자체에 적응을 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 근본적으로, '정신적인 자세'부터 가다듬는게 가장 큰 도전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두 무대의 성격은 워낙 달라서, 가수들이 이렇게 뮤지컬 무대에 많이 서는 것 자체가 좀 특이한 현상입니다. 그건 다음에 따로 얘기하기로 하고요.

이기찬은 이 특이한 주인공의 캐릭터를 일단 입습니다. 딱히 선입관을 가지고 간 건 아닌데, 제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신을 버립니다. 어렵지 않게요. 아주 편하게 멜빈이 되고, 또 '녹색괴물'도 됩니다. 소리도 달라져요.

처음 이기찬이 입을 떼는데, 소리가 많이 쉬어있더군요. '저 사람 엄청나게 전력을 쏟아서 공연을 해왔구나'라는 느낌을 받으면서, 그건 당연히 노래들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대사만 해도 목소리가 쉬었겠더라고요. 그는 웅얼거리지 않고, 아주 우렁차게 대사를 하고, 노래를 부릅니다. '발라드 가수 이기찬'은 쓱싹 해체해버리고 말입니다. 그렇게 캐릭터를 입은 그는, 대사 흐름이 심지어는 노래 흐름보다 더 인상적입니다. 노래가 나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여시장 정영주와 대결할 때조차도, 안 밀리고 함께 공 튀기기를 합니다.

초반부에 녹색괴물로 변하고 나서는, 계속 그 분장을 한 상태에서(얼굴이 안 보입니다) 공연을 하는데, 마지막 커튼콜에서야 얼굴 분장을 벗고 무대에 섭니다. 땀으로 젖은 그를 보며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이 뮤지컬은, 어떤 식으로든간에, 그라는 공연자의 성장에 큰 역할을 해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앞으로 더 많은 뮤지컬을 해도 되겠더라고요.

제가 본 공연이, 캐스트 일정표를 보니, 그가 4회 연속 공연을 해낸 후의 마지막 공연이더군요. 공연에 특별히 무리가 없었지만, 그래도 목이 꽤 쉬어있었는데, 좀 회복되었을 때의 소리도 꼭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본조비 키보디스트가 풀어놓은, 락넘버들을 - 꽤 당차고 재미나게 소화를 했거든요.

*너무 길어지네요. 좀 짧게 마무리해야겠어요. 여주인공 최우리도 정말 근사합니다. 이 사람,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예쁘고 그리고 노래도 잘합니다!! 춤도 잘 춰요. 연기도 잘 합니다. '백치미의 금발 미녀'역을 앙증맞게 해내다가, 노래를 할 때면, 누가 헤드윅 이츠학 출신 아니랄까봐 파워풀한 바이브레이션과 유연한 애드립으로 곡의 흐름을 한껏 끌어올립니다. 한국 뮤지컬계의 성장에는, 예전에도 말했지만, 정말이지 이런 든든한 여배우들의 지지가 큰 몫을 한다니까요.

*고명환도 재미있던데요. 함께 '멀티맨'역을 맡은 임기홍 배우도 정말 잘 한다던데(그는 올해, 바로 이 멀티맨 연기로 뮤지컬 어워즈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으니까요) 전 고명환의 연기도 재미나게 봤습니다. 전 개그맨들의 연기나 노래에는 살짝 의구심을 가지는 감상자인 편입니다. 거기엔 '웃기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라는 유희적 느낌이 희미하게 감돌기 때문입니다. 멀티맨 역할은 정말 '웃기면 되는 역할'이기도 해서, 그게 딱히 위험요소는 아닌데, 그런데 고명환은 자신의 유머센스를 적절히 뽐내면서도, 그 이상의 무언가 - 무대에 서는 사람으로서의 보다 큰 심지를 가지고 임한다는 느낌입니다.

*뒷부분에, 전반부만큼 인상적인 '빅넘버'가 없고, 기술적인 장면 전환으로 이어지는 점이 살짝 아쉽습니다만 그 기술적인 장면 전환의 속도감과 극적 전개는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이 뮤지컬을 본 모두가 언급하고 지나가는 장면은 - '함께 존재하는 게 불가능한' 여시장과 멜빈 어머니가 함께 등장해서, '지킬앤하이드'의 '컨프론테이션'을 패러디하는 장면입니다. 이건 스포일러일 수도 있지만, 사실 알고봐야 더 재미있어요. 그러니 지킬앤하이드를 미처 못 보신 분들은, 해당 곡의 영상들이 많으니 꼭 찾아보고 가시길.


3

*무대 위에서 뛰고 날고 엎어치고 메치고 춤추고 유혹하고 사랑하고 죽이고 살리는 5인 배우들의 에너지가 청중들을 압도하는 뮤지컬 '톡식히어로'입니다. 지금 한없이 유쾌한 웃음이 필요한 분들에게는, '명약 처방'이 될 겁니다.

*단, 13세 이상 입장가이긴 하지만, 몇가지 표현 때문에 청소년들이 보기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할 분들도 꽤 될 겁니다. '인형'식 소도구를 쓰긴 하지만(당연한 얘기죠?), 팔다리가 뽑히고 목도 뽑힙니다. 전 2층에서 관람하면서 전혀 못 느꼈는데, 앞에서 본 어떤 지인들은 좀 부담스러웠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렇게 심한 건 아닙니다. 미국 B급 영화의 유머 코드를 연상하시면 됩니다. 유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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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1열의 두 관람자들은 - 극중 녹색괴물에 의해서 머리채를 잡히시게 됩니다. 유의하거나, 즐기시길!! ^ ^

*아참, 연출이 오만석입니다. 미국 세트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곤 하지만, 어쨌든 대단히 영리한 세트와 구성입니다. 특히 한국어로의 각색이, 정말 훌륭하게 이루어졌어요. 전반적으로 이런 미국적 코미디물을 이만큼이나 무리없이 한국 관객이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낸 연출의 힘엔 정말로 박수를 보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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