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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내 마음이 들리니 vs HBO 얼음과 불의 노래 - 눈빛, 동과 서
2011-04-24 , Sunday

*제목도, 마음도 거창한데, 이래저래 여력이 없어 잡담만 해야겠네요.

*오늘 7회를 봤는데, 이미 지난주에도 그랬지만, 성인 연기자들로의 전환이 그야말로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네요. 황정음은 너무 발랄해서(그녀의 출연작으론 거침없이 하이킥만 본 상태라서요), 남궁민은 너무 부드러워서, 김재원은 너무 로맨틱해서, 아역 시기의 이 드라마가 가졌던 그 '날선, 미묘하게 팽팽한 느낌'을 이어갈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 짜잔~, 그야말로 성공적으로 이어갑니다.

*황정음은 충분히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연기를 하고 있고, 김재원은 적당히 차갑고, 남궁민은 - 이 작품이 가지는 그 '미묘한 에너지'를 그야말로 통째로 받아안아서 발산해내네요.

*지난 시청기를 쓰다가 발견했듯, 마침 환타지 '얼음과 불의 노래'도 방영되었습니다. 비슷한 점이야 없죠. 제가 언급했던 그 '아이의 추락' 빼고는 말입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첫회를 조금 보았습니다. 두 작품의 시작을 공교롭게도 나란히 보면서 그 생각을 했습니다. '동양과 서양이 가진 정서적 차이'를 말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드는 생각 - 이게 나이탓은 아닌 것 같고, 경험이 많아지면서인 것 같습니다. 어릴 때는, 서양인들은 육식 동물 같고, 동양인들은 초식 동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뭐 실제로도 그런 경향이 있죠. 그런데 그 후에 새롭게 든 생각은, '눈빛의 차이'입니다. 두 문화권은 눈빛이 참 다릅니다.

*서구의 눈빛은 '동動의 눈빛'입니다. 그것은 명백한 메시지를 담고 있고, 의사를 전달하고 있고, 의지를 나타내죠. 그것은 하나의 동적 태도이고 행동과 연관되죠. 그에 반해 동양의 눈빛은 정靜의 눈빛'이죠. 그것은 물론 행동과 연관되는 경우도 많지만, 전혀 다르게 그 자체로 완결되는 '무언가'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성격의 눈빛 중 으뜸은, 요즘은 한국 사람들의 눈빛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한국인이니 정말 아전인수격인 해석이죠? 그런데 한국인들의 눈빛은 정말 좋지 않나요? 특히 '복합적'이기로 따지면, 거의 으뜸이 아닌가 싶습니다. 단순히 의지나 감정이나 욕망이 아닌, 미묘하거나 착찹하거나 아련한 감정을 담아내는 걸로는 말입니다.

*뭐 이쯤 하고, 그런 생각은 이전에 했던 것인데, 이번에 두 드라마를 보노라니 정말이지 그게 딱 대비되더군요. '얼음과 불의 노래'는 이전에도 얘기했듯, 정말 재미있고 거대한 역작이긴 한데, 꽤 잔인합니다. 그게 끝없이 이어져서 나중에는 좀 읽는데 지칠 정도에요.

TV드라마의 틀에 그 '강성의 내용'을 담아내겠는가 의문을 품었는데, 제가 미국 TV드라마를 오랫동안 안봤더니 그 수위를 몰랐던 것인가 봅니다. 완전 강성이던데요. 대놓고 잔인하고 에로틱한 장면들이 나오더군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게 오히려 제겐 별로인 겁니다. 세트나 배우들은 뚜껑을 열어보니 생각보단 괜찮고('괜찮다'라고 표현하지만 극의 스케일을 생각하면 대단한 거죠), 극의 진행도 HBO의 명성답게 괜찮은데, 또 원작에도 비교적 충실한데 - 그 방식이 너무 물리적으로만 충실한 겁니다. 원작에 나온 피만큼 피가 나오고, 원작에 등장한 살만큼 살들이 드러나는 데에도 - 오히려 설레임이 싹 가라앉더군요. 전 이제 '극중의 살과 피'에는 그다지 흥미를 못 느끼는 고리타분한 인간이 되었나봅니다. 그렇지만 충분히 재미는 있겠더군요. 그런 자연주의적 방식의 접근이 쿨할 수도 있는거고요.

*그렇지만 전 이젠 역시 '내 마음이 들리니'쪽의 접근이 좋습니다. 이게 진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인간이란 까놓고 보면 '욕망을 쫓아가는 존재'라는 이야기는 이십대 때에는 꽤 매력적으로 들리는데, 이젠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훨씬 더 중요한 인간의 본질은, '승부'보다는 '관계'속에 있죠.

*그런면에서 오랜만에 우리가 TV에서 만나는 이 신선한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는 - 인간의 관계가 빚어낼 수 있는 모든 아름다운, 혹은 추악한 가능성을 끝까지 쫓아가되, 균형감을 잃지않고, 나름의 미학을 확보해내고 있는 듯 합니다. 지금까지는요.

*이 드라마에서 가장 좋은 점: 등장인물이 모두 바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정보석 조차도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존심을 가지고 있고, 최선의 방법을 모색하고, 자신을 조절할 줄 알고, 상대를 바라볼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어디에요.

*그리고 서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말'을 합니다. 그냥 이렇다저렇다 말만 하면 간단한 것을, 몇회 내내 끙끙 앓고 속이고 숨기고 하는 짓거리가 없네요. 아, 시원해라.

*가장 놀라운 대목: 이 드라마 주인공인 김재원이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를 가진 인물이라고 미리 들었습니다. 그런데 독순술을 배워 완벽하게 정상인 행세를 한다고요. 그래서 - 괜히 어설프게 청각 장애를 다루고, 또 말도 안되게 장애를 슈퍼맨처럼 극복하는 접근방식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꽤 섬세하게 접근하고 있네요. 제가 본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소리'에 관한 그의 마음이, 간절한 그리움이, 예민함이 조심스럽게 전달됩니다. 듣지 못하게 고통스러워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소리를 들을 수 없기에, 모든 소리들이 가장 큰 그리움이 되는 그 느낌을 오늘 김재원의 등장 장면에서 느끼면서 꽤 놀랐네요. 거기다 그가 정상인 행세를 하기 위해, 해야하는 자잘한 노력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겪어야하는 어려움들도 정말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것 또한 대단해요.

(동시에 그 대목에서, 음악을 좋아하는 느낌과 흡사한 기묘한 공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소리'와 '말'과 '노래'는 같은 테마의 다른 측면들이죠. 요즘 부쩍 이러한 주제를 환기시키는 것들을 많이 접하네요)

*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드라마를 만나는 느낌입니다. 멋진 전개가 이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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