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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 언제나, 변하지 않는 바로 그 곳에...
2013-04-01 , Monday

많은 사람들이 '중국 반환 이전의 홍콩'이 근사했다고 입을 모아 말하지만, 난 지금도 딱히 나빠보이진 않는다. 홍콩은 아직도 매력적인 도시고, '힘센 친부모'인 중국과 이만하면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 것 아닐까.

그래도 분위기가 다르긴 하겠지. 그런데 그건 어쩌면 영국령을 벗어나서 다른 것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이제 그곳에는 - 어떤 한 사람, 한 남자, 혹은 한 배우, 한 가수가 없어서일 수도 있다. 사람 하나가 떠나갔다고 해서, 도시국가 수준의 한 사회 분위기가 바뀌나 싶겠지만 - 장국영과 홍콩에 관한 한, 그래보인다. 그렇게 느껴진다. 그리하여 홍콩은 '그가 있던 시기'와 '그가 없는 시기'로 나뉜다.

한 사람으로 인해, 한 장소의 느낌이 통째로 바뀌는 것은 - 바로 '사랑'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을, 세계의 중심으로 삼곤 한다. 그리고 그가 떠나면 세계의 중심이 이동한다. 홍콩 사람들은 장국영을 사랑했다. 그리하여 홍콩은, 세계의 금융회사들이 모두 들어오는, 동서양의 경제적 가교 역할을 하는 잘 나가는 도시이기 이전에,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인물이 그들을 지켜주고 있는 도시였다. 그는 빅토리아 하버의 공연장에서 수십일간에 걸친 장기 공연을 했고 홍콩 사람들은 모두가 빠짐없이 공연을 보러갔다. 바로 이런 미소를 보고, 이런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노래를 따라부르기 위해서 말이다.

이 유튜브 동영상은 1989년 고별 콘서트 실황의 일부이다. 난 광동어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지만, 그가 청중들에게 던지는 시선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 사이의 교감을, 그와 홍콩의 청중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워하는지를 생생히 느낄 수 있다.그는 여기서 자신이 주연한 천녀유혼의 주제가를 부른다. 2분여쯤에, 그가 청중들에게 싱어롱을 시키는 부분을 보시라. 그 시간, 세상의 무엇이 더 필요했겠는가. 그에게, 그들에게.



1989년에 나온 '장국영 고별 콘서트 실황'이 상당히 좋다는 사실은, 음악을 즐겨 듣던 사람들 사이에서 알음알음으로 오랫동안 퍼져나갔다. 한국 초콜릿 광고에도 나오는 인기있는 아이돌 스타의 공연 정도가 아니라, 유명한 영화배우의 무대 나들이 정도가 아니라, 대단히 개성 강하고 야심찬 자기 세계를 갖춘 음악인이었다는 사실이 말이다. 나 또한, 영화배우로서의 그도 원래 좋아하고 있었지만, 그의 이 무대를 보고서야, 진짜 장국영의 힘을 실감했다.

그가 1997년 컴백무대를 가졌을 땐, 직접 홍콩에 가서 공연을 관람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해외에 가서 가수의 공연을 관람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중앙 사각 무대에 커다란 피라미드가 설치되어 있길래 뭔가 했더니, 피라미드의 사면이 들리면서 천장 위로 올라가 조명판 역할을 하는 - 지금 기준으로도 대단히 놀라운 무대였다. 아주 즐겁게 공연을 관람하고, 또 관람 전후의 어느 날엔, 장국영이 운영한다는 홍콩섬의 까페에서, 차를 한잔 하기도 했다. 장국영 팬들은 모두 들르는(즉, 홍콩 사람들과, 그의 아시아팬들이 모두 들르는), 홍콩의 명소가 된 곳이었다. 유명인사의 샵 답지 않게 대단히 조용하고 점잖은 분위기의 까페였고, 솜씨좋은 웨이터들이 서빙을 하고 있었다. 거기서 마신 음료수는 '아이스 레몬티'였고 난 그 잔의 모양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세상에서 이렇게 맛있는 아이스 레몬티는 처음 먹어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리하여 내게도 홍콩은 장국영이 있는 시기와 그가 떠난 시기로 나뉜다. 지금의 첵랍콕 공항 말고, 카이탁 공항으로 가던 시절. 비행기가 건물을 스칠듯이 낮게 날아, 세계 최고의 롤러코스팅 경험을 주던 시절, 난 '냄새를 맡은 순간'부터 홍콩을 너무나 사랑했지만, 그 모든 경험들의 끝자락엔, '그리고 여긴 장국영이 있는 도시란 말이지...'하는 기분좋은 여운이 함께 했다. 그건 마치 케이크 위에 올려진 체리처럼, 쌀국수 위에 올라간 풍미좋은 고수잎처럼, 함량과 부피가 작다해도, 그것을 '그것'이게 만들어주는 뚜렷한 힘이었다.

2003년 4월 1일 그가 떠나고 이제 10년이 지났다. 10주기 행사가 여기 저기 많다. 그가 떠나고 얼마 안 있어, 그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호텔의 스태프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아주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었노라고 그가 말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이 유명인사의 죽음 또한 잊혀지겠지...라고 생각했다. 이 상실의 느낌 또한 당연히 사라지겠지...라고.

그런데 10년이 지나고 보니, 이제야 알겠다. 이 상처는 영원히 치유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홍콩도 이 상처에서 치유될 수 없고, 홍콩 사람들도, 그의 팬들도, 그리고 나에게도. 이건 치유될 수 없는 상처이기도 하고, 어쩌면 치유하기 싫은 상처이기도 하다. 그의 부재가 우리에게 준 상처를 그냥 이대로 놔둠으로써, 그런 방식으로 함께 하는 거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웃음을 짓던 한 예인을 위해서, 가장 아름다운 동양인 신사의 기억을 위해서, 그가 만들어냈고 참여했던 숱한 명작과 명곡, 야심찬 무대, 모든 한계와 상황들 속에서 더 없이 예민하게 세상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투사함으로써 새로운 반열의 작품을 만들어냈던 위대한 배우이자 가수인 그를 위해서, 우리나라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출연해서 이소라에게 맘보를 가르쳐주던 그 다정한 모습을 위해서 - 우린, 혹은 나는 내 기억의 한 부분을 언제나 이렇듯 아픈 상태 그대로 기꺼이 놔둘 작정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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