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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도] 哀의 서사 - 관계의 미로에 빠진 조선
2015-10-08 , Thursday

[관람기입니다. 스포일러가 당연히 있을 겁니다. ^ ^]


*조승우의 OST를 듣고 바로 영화 '사도'를 보고 왔다. ^ ^

*영화 등을 보고서는 좀처럼 울지 않는 지인이 있다. 영화는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영화 매니어는 아니었다. 내가 영화를 보려고 할 때 추천을 구하는 부류다. 그런 그가, "자신을 펑펑 울게 만든 두번째의 영화"라고 했다.

*"얼마나 끔찍하냐"고도 물어보았다. 최근에는 그런 작품은 피하는 중이다. 작품성 있는 영화에 잔혹코드를 넣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한국 영화에선 더하다.  더군다나 사도세자를 다뤘으니, 훨씬 더할 것이다. 그런데 아니란다. 오히려 생각보다 훨씬 차분하고 담담하다고 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의외'라고 생각했다. "왜 사도세자를 그렇게 다루었을까?"라고 생각했다. '지적(知的) 거리두기'인가 생각했다. 그것도 딱히 내가 끌리는 영화의 작법은 아니다. <잔혹>은 충분히 봤고, <거리두기>도 충분히 봤다. 그런 '영화작법'은, 나는 이제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그런던 차에 조승우의 OST를 듣자마자 바로 들었던 생각: "아니, 이건 그 무엇보다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어?"

*그렇게 가장 유능한 영업맨(!)이 등장한 덕분에, 심야에 극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나 역시 엄청나게 울었다. 나는 신파극을 보면서도 가끔 운다. 별 감정없이 '최루작용'에 반응한다. 하지만 이 극은 신파극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 울음도 '신파극을 보았을 때 나오는 울음'이 아니었다. 이 극은 '비극 悲劇'이 아니라 '애극 哀劇'이다.

*역사극이긴 하고, 역사에 관심많은 사람들은 재미나게 숱한 해석을 하며 볼텐데 - 역사와 무관한 어떤 이야기이기도 했다. 사도세자의 이야기인데 어떻게 역사와 무관하냐고? 그렇다. 그런데 '그런 지점'을 포착한 것이 이 영화다. 무려 사도세자의 이야기인데도, '역사'와 무관한 무언가를 포착해내고 확대해서 펼쳐낸다.  

*이 이야기는 - 관계의 미로에 빠진 사람들의 운명을 다룬다. 그 미로를 우리는 여러가지 이름으로 부른다. 그것은 가족일 수도 있고, 국가일 수도 있고, 정당일 수도 있다. 온라인 커뮤너티일 수도 있다. 그러한 집단의 조직구성체계는, 숱한 역할과 관계를 안에 내포한다. 그 체제가 강하면, 사람은 그 안에 옴쭉달싹못하고 갇힌다. 조선의 왕실은, 그게 어마어마하리만큼 강한 곳이었다. 그 관계의 조직도는 너무나 복잡해서 미로와도 같았고, 너무나 강압적이라서 감옥과도 같았다. 아버지-아들의 역할과 관계는, 그 속에 위치한다. 달아날 구멍은 없다. 그리고 서로 다른 역학을 가진 두 '갇힌 존재'는 충돌한다. 관계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잘못 든 것이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와 아들은 선다. 열린 길로 갔어야 하는데, 닫힌 길이다. 해법은 없다. 그 벽을 사이에 두고 읊는 '시 詩'같은 영화였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너가 잘했네 내가 잘했네 하며 옥신각신한다. 고집도 부려보고 만용도 부려보고 호기도 부려본다. 그러다가 서서히, 천천히 깨닫게 된다. 미로에 들어섰다는 것을. 그것이 단순한 구조의 미로였다면, "그럼 이리로 나와봐"라고 하며 다른 쪽 통로로 가서 이리 저리 모퉁이를 돌아나가 다시 만나면 되는 문제다. 그러나 미로는 구중궁궐 속에 수십, 수백겹으로 꼬여있었다. 두 사람은 세상 누구보다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빠져나가기 위해서 그 미로를 무너뜨리는 순간, 자신들도 파멸한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 미로는 자신들을 지키는 '성'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를 포기하지 못한다. 이 영화는, 한없이 불완전하고 불가능한 관계의 쌍방이면서도 서로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 때문이었고, 결국 이 영화를 화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것은, '사랑'이다. 이것은 역사극도, 심리극도 아닌, 애정극이었다. 애(哀)를 다룬 애정극이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애(哀)라는 감정이 저런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 사랑하면서 슬픈 것. 사랑하기 때문에 슬픈 것. 더 사랑하지 못해서 슬픈 것. '사랑'이라고도 '슬픔'이라고도 번역할 수 없는 그 기묘한 감정의 대하서사를 이 영화는 보여준다. 관계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상실해야하는 두 사람의 사랑은 애(哀)가 되어, 조선의 하늘을 감돈다.  

*난 이게 조금도 '역사극'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역사극으로 느껴지려면, 우리가 관계의 미로를 탈출한 상태여야 한다.
그런데 2015년 버전의 조선이 그런가? 진짜로?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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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의 평이나 관련 기사는, 그동안에는 제목만 슬쩍 봤는데, 지금 몇개만 읽어보았다. 그런데 혜경궁 홍씨의 노인 모습도, 정조의 춤에 대해서도, 나로서는 전혀 어색하거나 질이 떨어진다거나 지루하다거나 흐름을 깬다거나 하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엔딩 시퀀스의 모든 장면들이 내겐 다 그럼직했고, 다 의미깊었고, 다 아름다웠다. 그 씬이 없었더라면 난 아주 많이 아쉬워했을 것이다.

단지, 사람들이, 특히 인터넷에 집중적으로 글을 올리는 세대들이 문근영이나 소지섭에 대해서는 강력한 이미지 고착이 이루어진 탓에, 오히려 그전까지의 감상 흐름을 이어가는 데에 어려움을 겪은 듯 하다. 나도 소지섭이 등장하고 나서 - 펑펑 울던 와중에도 - 1,2초 정도는 '아, 소지섭이 나온다고 헀지'라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많은 사람이 그렇다면 문제가 아니냐"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참 어려운 부분이다. 아마 극장의 분위기도 영향을 끼칠지 모르곘다. 그러나 나는 좋았다.

문근영도 내내 훌륭했지만, 소지섭의 연기도 좋았다. 두 사람의 감정은 극의 흐름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고 과잉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주연으로서의 연기를 하지 않고 '강한 조역' 혹은 '강한 카메오'으로서의 위치를 굳건하게 지켰다. 나는 특히 춤이 좋았다. 길었다는 이야기들이 무수히 지나간 모양인데, 하나도 길지 않았다. 춤 사위는 아름다웠다. 이준익 감독이 엔딩 장면에 대해서 스스로 코멘트한 것도 좀전에 봤다. 보통은 감독의 코멘트는 코멘트일 뿐이고 내 감상은 따로 존재한다. 그런데 난 이 영화에 관한 한 그가 의도했다는 것들을 모조리 느꼈다. 바로 그렇게 감상했다.

정조는, 명백하게 춤으로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를 관객으로 두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세상 그 어느 것과도 비길 수 없는 간절한 사랑 - 애(哀)를 담아서. 마지막에 그가 창공으로 활 시위를 당길 때, 정조도, 혜경궁 홍씨도, 관객인 나도 - 우리 모두 듣고 있었던 이야기: "이제, 그가 오로지 정해진 과녁을 향해서만 날아가야만 한다는 그 고통스러운 숙명의 굴레에서 해방되어서 자유롭게 떳떳하게 저 하늘로 날아갑니다"  

그렇게 哀의 서사는 완성된다. 우리가 가진 가장 어두운 부조리함과 우리가 가진 가장 위대한 힘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말이다.





*다시 영업맨 조승우의 OST 이야기. 자신이 출연하지도 않은 작품에 대해서, 감명을 받았다는 이유로 무보수로 OST에 참여해서,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그 위에 영화 장면까지 덧댄 뮤직비디오가 나왔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영화와 어우러져 하나도 이질감을 주지 않고, 영화를 미처 보지 못한 자의 설렘을 방해하지도 않고, 영화를 이미 본 자의 감동 또한 방해하지 않고, 조용하고 담담하게 그 모든 길을 함께 걷듯 노래해낼 수 있는 사람은 - 딱 조승우 뿐 아닐까. 본인이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노래를 하다니... ^ ^ 하긴 그 사실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그는 아마 절대로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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